혀끝으로 씁쓸함이 올라올 때, 대화의 흐름이 끊긴 것을 알았다. 더이상 할 말은 없는 거지? 네가 말했다. 으응... 나는 미련이 남아 말을 조금 끌었다.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나는 괜히 빨대 끝만 오물대며 씹을 뿐이었다. 입술이 말랐지만 커피를 마시기는 싫었다. 이걸 다 마셔버리면 오래간 볼 일이 없을 테니까, 일부러 커피를 한 방울 씩 마셨다 너도 ...
선생님, 구십구개의 탐미를 보내주세요. 당신이 가진 정욕과 질투와 이기심을 동봉해서 우체국에 가 제일 빠른 택배로 부쳐주세요. 선생님, 구십구개의 쾌락을 보내주세요. 가장 더럽고 역한 것들을 그러모아 찢고 오리고 붙여서 이혼과 파멸과 자살과 협박과 구토와 부패하는 사체를 보여주세요. 선생님, 구십구개의 후회를 보내주세요. 주름진 성대와 더듬거리는 손길을 첨...
침을 꼴깍 삼키는 것도 괴롭다 너는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어? 나는 이런 생각조차 죄를 짓는 기분이 드는데 사실은 말야, 나 사람을 죽였어 한 명도 아니고 수십명을 죽였어 너는 어떻게 이걸 견뎠어? 목을 조를 때 기쁘진 않았어? 죽은 것에게 사랑을 느꼈어? 꺼져가는 숨이 슬프진 않았어? 나에게 고맙진 않았어? 혹시 후회를 했어? 영서는 말이야, 말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안전합니다. 이곳은 꿈속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따라 자택까지 안전하게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이 공간은 하얀 페인트로 발린 정육면체의 밀폐된 방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버튼을 누르면 꿈에서 깨어나실 수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방법 외에는 이 공간에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횟수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버튼 옆에 붙여져 있는 종...
베란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빨간 발톱을 가진 늑대가 틀림없어. 내가 눈을 돌리면 문을 열고 날 잡아먹으러 올 거야! 엄마, 엄마는 언제 오지? 그때 쉬익, 하고 바람이 불었어요! 늑대가 나타난 것 같아요. 엄마! 엄마 어디 있어요? 엄마! 늑대가 나타났어요! 날 잡아먹을 거예요! 베란다에서 무언가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어. 틀림없이 배고픈 늑대가 바닥을...
한 장 두 장 넘기는 나의 기억낡고 부드러운 파란 공책에 대한 이야기 첫 장에 쓰여진 것은 작은 나뭇가지와 마른 아침의 새소리 중얼거리듯 들리는 잠꼬대와 햇볕의 냄새따듯하고 포근한 한 낮의 게으름 다음 장에 그려진 것은 높은 난간과 흔들림작게 떨어지는 알약들의 소리와 젖어 눅진해진 팔미에의 부스러기더운 뺨과 간지러운 위장, 때묻어 부끄러워진 것들마지막 장에...
영서야 결국 너도 안된대 다 네가 자초한 거래 애초에 꿈꿀 수 없던 일이래 그런데 어쩌겠니? 영서가 저지른 일인데 와중에 밥이 넘어가니? 넘어가긴 해? 영서야 나는 그냥 포기하고 싶다 같이 죽을까 우리가 세상을 고르지 않았다면 적어도 한 사람은 행복했을 텐데 다 네 잘못이야 영서야 내 생각에 너는 뭔가 잘못되었어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어 영서야 백날천...
우리는 자주 외로움에 대한 시를 써요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시선이 닿으면 서로에게 환하게 웃어주고맛있는 밥을 먹고 꽃집에서 꽃을 선물하고좋은 향이 나는 핸드크림을 발라주기도 하고요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잊고 살았어요당신의 안부를 물어봐도 될까요?당신에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당신이 거기에 있다면 내가 찾아가도 될까요? 당신은 그래도 괜찮...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젓는 내가 굳이 취해 붉은 얼굴로 굳이 떨리는 손으로 당신 앞에서 무릎 꿇고 겸손히 기도하는 이유는 나를 좀 봐 달라는 겁니다 나를 제발 보아 달라는 거예요
이름을 붙이려다 말았다 그것은 사랑같기도, 미움같기도아예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돌연 마음을 고장내었다가뒤돌아서면 불편하게 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금새 식어버리게 만들고설레게 했다가 실망하게 만들고 그의 초성을 찾아 책을 펴다 포기하게 만들고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나를 사랑하게 만들고 그리고 울게 만들었어요. 이리 새로울 수 있나요나의 독백을 온전히...
나의 깊은 주름에 하나 고인 별 눈에서 눈으로, 눈에서 입으로 또 몸으로 서로 눈을 맞추고 그 안의 별을 마주하고 아마 다시는 뜰 수 없을테니 뚝. 눈을 감는 순간 고랑의 별은 가장 빛난다 나의 빛나는 별은 주름을 따라 천천히 떨어진다 둥글고 건조한 언덕을 지나 부드러운 주름이 잡힌 두 다리를 지나 딱딱하고 차가운 벼랑의 끝에서 떨어져 한 없이 영원으로 떨...
우리는 헤어질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상하지, 널 그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미워한다는 게 너는 내 버팀목이었고, 나는 네 반쪽이었잖아 우리는 어떡하면 좋니? 나는 가끔 세상이 우리에게 못되게 굴었으면 좋겠어 세상이 우리를 너무 싫어하고 증오해서 너와 내가 진정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말이야. 웃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를 영원히 사랑할 수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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